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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중의 노트 (고린도후서 5:1-10)

2 Corinthians 5:1-10 (고린도후서 5:1-10)

먼저 내가 확신해야 하는 것은, 내 안에 정말 성령님이 계신것인가 확인하는 것이다. 어떻게 확인해야 할까. 지난주에도 새벽예배때 기도했다. 성령님을 주시라고, 혹은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해달라고… 그리고나서, 가정을 위해 기도하는데, 성은이가 건강하고, 다은이와 와이프를 생각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성령님이 마음을 터치하신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내가 성령님을 너무나 그동안 근심시킨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생각하는데, 감사만 한것이다. 성은이가 건강한것이 그냥 너무 감사해서 감격의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것 같다. 그리고, 이 커다란 죄인이 무엇이길래, 산호세까지 와서 밥을 먹고 살 수 있게 하신것 뿐아니라, 여러가지 물질적, 경제적으로 살 수 있도록 배려하고 계신 것일까 생각하는데, 기도중에 눈물이 쏟아지는것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심판때에 각 사람에 대해서 선한일과 악한일에 대해서 하나님 보좌 앞에 선다고 한다. 성령을 주시는것은 하나님이시며, 내가 그 증거 찾는데 시간과 노력을 많이 쏟을 이유는 없을 듯 하다. 내가 해야 할일은 믿음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할 칭찬 받을 만한 선한일에 집중하여 내 인생에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러면, 나중에 하나님보좌 앞에서 심판대에 섰을때, 하나님이 평가 하시겠지. 그 분은 정직하시고, 명확하시며, 모든것을 알고 계시기에, 그 분이 하시는 칭찬의 말을 듣고 싶다.

칭찬의 말을 듣고 싶어 선한 행동을 한다….이것이 과연 괜찮은 일일까? 칭찬받기 위해 선한일을 한다면, 그 선한일이 과연 정말 선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 예전에는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생각은 사탄이 나에게 선한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데 있다는것을 발견했다. 지난주 새벽예배때의 장성우 목사님이 선택하신 본문인 마태복음 25:14-30에 보면, 한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하는 변명을 보면, 주인에 대해서 자신의 잣대대로 평가하고 결론지으면서, 자신은 정작 아무일도 하고 있지 않다가, 나중에 주인에게 혼나고 있는 장면이 있다. 악하고 게으른 것은 그점이다. 주인에 대해서 자신이 평가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결정을 하지만, 실제 결과는 아무것도 없는것이다.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삶인것이다. 그 삶을 하나님은 좋아하시지 않으시며 칭찬하시지 않는 것이다.

생각에는 세가지 뿌리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나의 생각, 하나는 사탄이 주는 생각, 하나는 하나님이 주는 생각이 있다. 내 마음에 들은 생각이라고 다 나의 생각은 아니다. 사탄이 가롯유다에게 예수를 팔 생각을 넣었다고 했고, 그는 그것이 자신의 생각인줄 알고 그렇게 행했다.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별해야 한다. 히브리서 4: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어 혼과 영혼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고 되어 있다. (유기성 목사님의 설교에서…)

하나님 앞에서 선한일을 자신있게 해야 할 것이다.

Joshua 1:1-9: 하나님께 사랑 받는 자의 성공

QT Word: Joshua 1:1-9

1 After the death of Moses the servant of the LORD, it came to pass that the LORD spoke to Joshua the son of Nun, Moses’ assistant, saying: 2 “Moses My servant is dead. Now therefore, arise, go over this Jordan, you and all this people, to the land which I am giving to them—the children of Israel. 3 Every place that the sole of your foot will tread upon I have given you, as I said to Moses. 4 From the wilderness and this Lebanon as far as the great river, the River Euphrates, all the land of the Hittites, and to the Great Sea toward the going down of the sun, shall be your territory. 5 No man shall be able to stand before you all the days of your life; as I was with Moses, so I will be with you. I will not leave you nor forsake you. 6 Be strong and of good courage, for to this people you shall divide as an inheritance the land which I swore to their fathers to give them. 7 Only be strong and very courageous, that you may observe to do according to all the law which Moses My servant commanded you; do not turn from it to the right hand or to the left, that you may prosper wherever you go. 8 This Book of the Law shall not depart from your mouth, but you shall meditate in it day and night, that you may observe to do according to all that is written in it. For then you will make your way prosperous, and then you will have good success. 9 Have I not commanded you? Be strong and of good courage; do not be afraid, nor be dismayed, for the LORD your God is with you wherever you go.” (Joshua 1:1-9, New King James Version)

QT Bread: On Shoulders Of Giants

What I’ve observed and What I am feeling:

하나님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모세의 두번째 리더로 세우면서, 강력하게 약속하시고 말씀하시는 부분이다. 특히 8절은 참 유명한 말씀이다. “이 책의 율법을 네 입에서 떠나게 하지 말고, 낮과 밤으로 그것을 묵상하여서 기록한 모든것대로 따라 지키어라. 그리하면, 네가 번영하고 성공할 것이다.” 라는 말씀이다. 그 번영과 성공 뒤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그 함께 하시는 이유는 이미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고 마음에 흡족한 믿음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제 Tweeter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부하, 사랑받는 부하라 는 글을 보면서 또 다른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 글은 직장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 같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 부부에서의 관계, 사회에서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관계에서, 사랑을 받는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정직하며, 긍정적인 시각으로 진취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인 것 같다. 게으르고, 부정적이고, 매사에 비판과 비난을 입에 다는 사람은 이미 잠언에도 나와 있지만, 그 인생이 망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여호수아와 같이, 하나님께 사랑을 받기 위해, 좀 더 부지런하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어떻게 원하시는지에 대해서 민감하게 잘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선택에 있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

오늘 아침의 QT 말씀은 롯과 아브라함이 땅을 선택하는 장면이었습니다. (Genesis 13:10-18, 창세기 13:10-18)

아시다시피 롯은 동쪽을, 아브라함은 서쪽을 선택했습니다. 선택한 이유는 그런데 다릅니다. 롯은 평야와 물이 잘 되어 있는 Jordan을 선택했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땅으로 (물론 그 땅을 지정한 것은 아니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선택권을 주시고 선택하라고 하셨습니다.) 가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둘의 선택에서 공통점은 둘다 자신들이 거할 곳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차이점은 롯은 자기의 판단에 의해서만 땅을 선택하고, 아브라함은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나서 자신의 판단으로 땅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땅을 선택할 때는 롯이나 아브라함이나 다 자기가 기존의 생각과 자료를 바탕으로 선택했을 것입니다. 다만, 아브라함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렸거나 하나님의 음성이 있은 후에 움직였다는 것이 다릅니다. 그리고 그 결론은 우리가 잘 알듯이 롯은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으로 나중에 도망나오게 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축복을 이어가게 됩니다.

저 역시도 어떤 것을 선택하거나 판단할때, 내가 기준이 되고, 내가 그동안 보고 느꼈던 Data를 근거로 판단하곤 합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기반으로 해서 판단하였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인생에 있어 영원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음성을 먼저 듣고 움직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됩니다. 내가 먼저 움직여서 실패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먼저 듣고 움직여 아브라함과 같은 축복된 삶을 살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얼마까지 정직할 수 있는 것일까?

얼마까지 정직한다는 말은 사실 어울리지 않는 말일 것입니다. 사실은 내 인생에 얼마정도는 속이고 살고, 얼마정도는 정직하게 살고 하는 것을 대충 감으로 얘기할때, 얼마정도까지 정직하다라는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에서의 정직은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오늘의 QT 말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깨끗한 정직이 교회내에서 필요한 듯 싶습니다. 오늘의 말씀인 Acts 5:1-11 (사도행전 5:1-11)를 볼때, 교회의 순전함(Purity)는 매우 필요한 조건 인 듯 싶습니다.

이에, 예전 일이 하나 생각이 납니다. 교회에서 있었던 일인데, 상세한 것은 여기에 적을 수 없지만, 제가 하나 비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비밀을 교회내에 밝히면, 어떤 한 사람이 크게 상처를 받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제 생각은 크게 상처를 받을만한 잘못을 했습니다. 이 일을 당시 목사님과 상의를 했을때, 목사님은 교회내의 불화를 염려해서 인지 말하지 않기로 권유 하셨고, 나 역시도 일이 껄끄럽게 될 것 갈아, 조용히 넘어 갔던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정직하게 교회내에 그런 얘기를 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교회내에서 정직해야 할 부분을 정직하게 하지 못한 성령님의 끊임없는 음성이 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전에 서울에 방문했었을때, 아이에게 줄 책을 책방에서 고르다가 “거짓말이 나쁜 건가요?”라는 비교적 짧은 어린이를 위한 철학책을 하나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거짓말에는 좋은 거짓말, 나쁜 거짓말이 있는데,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에게 Balance를 잘 맞추어서, 아이들이 스스로 어떨때 좋은 거짓말이 필요한지, 그리고 나쁜 거짓말은 해서는 안되는지 가르쳐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요? 아마도 성경은 거짓말이 십계명에도 있듯이, 거짓말을 무척 죄악시 하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적으로도, 거짓말을 한 경우에 하나님께서 무척 싫어하시는 장면이, 아브라함과 다윗등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일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느냐 안하느냐가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아니라, 가장 우선순위는 하나님께 있으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고, 그리고 그의 의를 생각한다면, 99%의 삶에서는 거짓말은 있어서는 안될 듯 싶습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이나 성령님을 속이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만 할 뿐 인 듯 싶습니다.

[QT] 예수 그리스도로 충분한 것일까?

QT 말씀: Acts 3:1-10 (사도행전 3:1-10)

QT 교재: Is He Enough?

크리스챤이라면 이 질문을 해봐야 합니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로만으로도 충분한가 하는 질문 말입니다.

Our Daily Bread의 오늘 본문에서 중국인 기독교인이 하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중국인에게 필요한 복음은 어떤 큰 프로그램이나 멋진 프리젠테이션이 된 것이 아니라, 중국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라는 말입니다.

저는 한국인에게도 필요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영어프로그램, 시간관리 프로그램, Family Night등의 프로그램들로 전도하려고 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들이 틀린것은 아니고, 분명 비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교회에 왔다고 해서 끝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확실한 복음 제시가 있어야 합니다. 복음이 핵심이 되어야 할 교회가 세상에 여기저기 끌려다니는 모습은 이미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또하나의 질문중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그렇다면, 돈이나 그런 것은 다 필요 없고, 오직 예수만 있으면 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돈에 대해서 비난만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삶의 우선순위가 하나님께 있으면, 우리의 풍족한 재물을 가난한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돈이 있는 것에 대해서 필요 없음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Temple에 기도하러 갔다가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돈”을 구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 베드로와 요한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금과 은은 내가 가진 것이 없지만, 내가 있는 것을 너에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라고 얘기합니다. 그에게는 금과 은의 돈이 그 당시에는 필요했을지 모르지만,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사랑과 힘입니다. 그리고 그는 일어나 걸어 Temple에 들어가 사람들과 함께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그가 태어나면서 앉은 뱅이였던 것을 다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치유되었덧 그 일을 볼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었습니다.

우리에게 과연 예수 그리스도만으로도 충분한 것일까요? 네, 그 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기도: 주님,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삶속에서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던 태도와 생각을 가졌던 저를 용서하시고, 나의 삶과 태도에 있어 베드로가 행했던 그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힘을 나타낼 수 있도록 성령으로 나를 강하게 붙잡아 주옵소서.

[QT] 하나님을 마음에 새겨두기

QT 말씀: Deuteronomy 31:16-22(신명기 31:16-22)

QT 본문: Wake-Up Music

오늘의 말씀속에서의 하나님의 분노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지만, 인도하시는 도중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뿐 아니라, 축복받은 땅으로 들어간 후에는 하나님을 잊은채, 이방신을 들여오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버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분노가 있으며,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노래를 짓게 합니다. 그것이 Deuteronomy (신명기) 32 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보면서,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대학생때부터 하나님을 찾고 만난이후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나도 때로는 방황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었으며, 축복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멀리하려고 했던 나의 마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주시고, 일할수 있는 터전을 주셨으며, 좋은 사람도 만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어리석음과 욕심과 사탄의 유혹속에서 나의 의지는 한없이 약하게 넘어졌음을 저는 또한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 그 노래와 같이 저에게 주신 노래는 무엇일까요?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찬양이 요즘 내 삶에서 메말라갔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시 찬양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배신하는 일을 나도 모르게 하는 경우와 내가 인지하면서 하는 경우의 두 경우에 대해서 주의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기도: 주님, 저에게 찬양을 다시 주시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것을 함부로 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내 삶에서 그치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