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이끄는 삶: 20일째: Restoring Broken Fellowship

오늘의 주된 주제는 깨어진 관계를 어떻게 회복하느냐 입니다.

평화는 미스코리아나 미스 유니버시티에 출연하시는 분들만 원하는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정말로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Peacemaker가 되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Peace는 누구나 사랑하지만, Peacemaker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땀과 노력과 불편한 관계를 극복해야 하고, 솔직한 얘기와 함께 관계를 깨지 않아야 하는 멋진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쉽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 집중하다보면, 조금 격한 표현과 말이 나올 수도 있고, 해결이 되어서 서로 좋은 관계가 형성되기 보다는 그 관계가 깨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마냥 숨기거나 계속 미루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즉시 행동하되, 우선 오늘 Chapter에서 Recommend 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겸손과 부드러운 말로 문제에 대한 제기를 하면서, 그 문제의 해결이 나에게 촛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유익이 될 것에 대해서 촛점을 두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문제 제기가 있어야 하며, 어물쩡 거려서도 안됩니다.

아, 정말 어렵습니다. 두가지가 상충되는 것 같습니다. 평화와 문제 해결은 공동체에서 정말 필요합니다. 다시 어제 Speech of Freedom과 Bad Words의 토론이 생각이 납니다. 결론은 Speach of Freedom입니다. 결론은 문제에 대한 문제제시와 해결책이 공동체에 필요할때 반드시 이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이행에 있어, 절대적인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먼저 기도하는 것이 필수 있듯 싶구요.

목적이 이끄는 삶: 19일째: Cultivating Community

미국 초등학교에서 흔히 있는 토론 주제중의 하나는 “Freedom of Speech” 와 “Bad Words”의 경중 (Weight)를 따지는 토론이 있다고 합니다. 두가지는 상호 충돌할때가 있는데, 그래도 어떤 것이 더 소중한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답은 “Freedom of Speech” 입니다.

오늘 공동체를 Cultivating 하기 위해 필요한 몇가지 요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즘 Community에 관련된 이야기중에서 역시 반복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은 Honesty 입니다. 만일 공동체에서 어긋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형제/자매가 있다면, “사랑”과 “겸손”을 가지고 그 형제/자매에게 다가가서 솔직하게 얘기해야 합니다. “사랑”과 “겸손”을 가지고 얘기한다 하더라도, 그 형제/자매가 싫어 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은 현대의 교회에 또하나의 문제점 중의 하나는 그렇게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을 두려워 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렇지요. 상대가 나를 싫어 할 수 있고, 관계가 깨질 것이 두려워서, “False sense of Peace”에 대한 미신으로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또한 무척 싫어하시는 것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물론, 무례하게 얘기하거나 정죄하는 투로 얘기하는 것은 옳지는 않겠지요. 성경은 적당한 때와 적당한 방법이 항상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 때에 용기를 내어 솔직한 고백과 솔직한 이야기들이 필요한 듯 싶습니다. 그리고 그 솔직함이 그 공동체를 더 가깝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외에 오늘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요소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는 것은 겸손, 예의바름, 비밀유지, 빈도 등이 있습니다. 비밀유지는 공동체에서 있는 “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다거나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서로 기도제목을 나누고 서로의 사생활에 대해서 얘기한 것을 다른 어디서도 얘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Gossip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은 Gossip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공동체를 깨뜨릴 수 있습니다.

종합하면, 이상적인 공동체는, 신실성 (Authenticity), 상호성 (Mutuality), Sympathy, Mercy, Honesty, Humility, Courtesy, Confidentiality, 그리고 Frequency 가 있을 수 있습니다. (중간에 한글로 번역하기가 제 실력으로는 부족해서 그냥 원문으로 썼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 18일째: Experiencing Life Together

크리스찬의 Fellowship에 대해서 오늘 설명하고 있네요. Christian Fellowship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요약하면, Authenticity (진실성/진정성), Mutuality (상호성), Sympathy (동질성), Mercy (은혜/자비)가 있다고 합니다.

흔히, Fellowship 이라고 하면, 그저 교회에서 모여서 밥을 먹거나 Refreshment 등을 먹으면서 서로 간단하게 얘기하는 정도로만 쓰여지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오늘 이 부분에서 Fellowship에 대해서 그런 것이 아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Fellowship을 하면서, 마치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행하고 사는 듯, 혹은 자신의 삶에는 그다지 큰 문제가 없는 듯,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마스크를 쓰고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Fellowship은 Authenticity가 있다고 합니다. 서로의 상처에 대해서 나누고, 서로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실패에 대해서 고백하고, 의심을 숨기지 않으며, 공포와 약함을 인정하고 도움을 구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Fellowship에서는 정직과 겸손대신에 있는 척을 하고, 역할놀이를 하며, 정치적이고, 표면적인 친절함은 있지만 얕은 대화정도가 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이것은 죽은 Fellowship 이라고 말하네요.

저도 그런 Authenticity가 있는 Fellowship을 가지고 싶습니다. 대학생때에 가졌었던 그 Fellowship을 사회에 나와서는 좀처럼 찾기가 힘드네요.

오늘 있었던 또 다른 교훈중의 하나는 은혜와 자비에 대해서 입니다. 이 은혜와 자비를 베풀기가 꺼려지는 큰 이유중의 하나는 용서와 신뢰를 구별하지 못하는데 있다고 합니다. 용서는 과거를 그냥 흘려 보내는 것이고, 신뢰는 반드시 미래의 행동과 같이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용서는 반드시 그 즉시 해야 하지만, 신뢰는 회복하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만일 누군가 계속해서 상처를 주고 있다면, 용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즉시 해야 합니다만, 신뢰를 바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상처를 주는 사람이 계속해서 상처를 주도록 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상처를 주는 사람은 반드시 그들이 시간을 통해서 변화 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Fellowship에 대해서 계속해서 다음 Chapter에서 다룬다고 하니, 기대가 되네요.

TruePreview: Mac OSX Mail에서 무조건 Mark as Read 방지하기

Mac OSX에 기본으로 있는 Mail Apps는 상당히 안정되고 괜찮은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용하는데 있어, 제가 한가지 불편했던 것은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기본으로 제공되고 있는 Preview Pane에 있는 내용을 볼때 무조건 Mark As Read로 Marking 하는데 있었습니다.

이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구글링을 한 결과 TruePreview Package라는 아주 훌륭한 Add-on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을 이용하면, Preference에 TruePreview Option이 생기고, Preview Pane에 Mark as Read Option을 즉시로 혹은 Delay로 혹은 Never로 선택할 수 있네요.

Easytag: MP3 ID3 Tag의 EUC-KR을 UTF-8 으로 변환하는 방법

기존의 가지고 있는 MP3 파일들이 Encoding이 EUC-KR로 되어 있어서 iTunes등에서 ID3 Tag들이 제대로 잘 안보여 집니다. International Language를 Support 하기 위해서는 UTF-8 이 표준으로 잡고 있기에 이를 변환해 주는 tool 이 필요합니다. 물론 iTune에서 바꿀 수 있는 기능도 있지만, 여러가지 불편한 점이 있기때문에 한번에 변환시킬 방법이 필요합니다.

이에 몇가지 인터넷에 많은 방법이 있지만, 가장 쉬운 것은 EasyTag 이라는 Utility를 이용하면 해결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Homepage: http://easytag.sourceforge.net

Ubuntu 에서는

apt-get install easytag

로 설치가 가능한 것 같구요,

MacOSX에서는 저는 port를 이용하여,

sudo port install easytag 

으로 설치하여 X11 을 이용하여 설치했습니다. 아마 Xcode를 이용한 방법이 또 있는 것 같은데, 잘 Search안하고 그냥 port를 이용해버렸네요. 그래도 대략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만족합니다. (Darwin Port는 http://easytag.darwinports.com/ 에서 참조했습니다.)

변환은 이렇게 했습니다. 1

easytag을 실행하고, Settings -> Preferences -> ID3 Tag Settings 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다음 Option을 선택합니다.

- Automatically convert old ID3v2 tag versios
- Try to save tags to ISO-8859-1. If it isn't possible then use UNICODE (recommended)
- Use non standard character set for reading ID3 tags: EUC-KR
- Use non standard character set for writing ID3 tags: UTF-8

그리고 MP3가 있는 Directory를 Browsing 하고 찾아낸 파일들을 Select 하여 Save 하면 됩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 17일째: A Place to Belong

오늘은 교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랑을 하고, Relationship이 있다면, 그 실천의 대상은 지역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도 얘기합니다. 교회 봉사가 너무 많아. 교회에서 뭐가 그렇게 하는게 많은지. 주말에 가족들이랑 어디 놀러가고 싶어도 못가겠어. 주중에도 왜 그리 모임이 많은거야? 꼭 교회에 봉사해야해? 그냥 일요일에 교회가서 좋은 말씀 듣고, 그냥 가족들이랑 나머지 시간에 놀고 하면 뭐가 잘못이야?

저도 너무 많은 시간을 교회에 쏟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 부정적인 입장이긴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 아무 봉사를 하지 않고 Dry하게 Attending만 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이유는 오늘 책에서 성경에 근거하여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교회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 구성원들은 그 몸을 지탱하고 있고, 어느 몸하나 잘못되면, 그 몸 전체가 아픈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몸을 잘 지탱하려면, 서로서로가 commit 하여야 합니다.

교회가 완벽하거나 이상적인 교회는 세상에 눈 씻고 찾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아주 성실하고, 착하고, 선하고, 예의 바르고, 사람들을 잘 챙겨주고, 친절하고, 그런 것으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는 “도”를 쫓아가려고 부지런히 삶에서 연습하고 다가가는 사람들을 Christian 이라고 부릅니다만, 꼭 그런 분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직책이나 그런것과도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는 타락한 죄인일 뿐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죄를 가진 우리를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commit 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면, 서로 부족하고 타락된 죄성을 가진 우리 서로서로가 “사랑” 으로 용서하고 가르치고 알려주고 등등으로 서로를 세워나가면서 서로에게 commit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석만하는 Attender와 교회의 몸의 지체인 Member 와의 차이는 그 commitment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Sadly, many Christians use the church but don’t love it

어떤 사람은 아이의 교육을 위해, 혹은 아이들때문에, 어떤 사람은 배우자 때문에, 어떤 사람은 사업을 위해서 등등으로 교회를 찾기도 합니다. 그것은 교회를 “이용”을 할 수는 있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주님, 교회를 이용하려하지 말고, 교회를 사랑하게 하옵소서. 주의 영적 지체인 형제/자매들을 잘 섬기고 Contribute 할 수 있도록 늘 약한 저를 성령으로 강하게 하소서.

목적이 이끄는 삶: 16일째: What Matters Most

Life minus love equals zero.

오늘 읽은 부분에서는 위의 부분이 다가 왔네요. 인생-사랑=0. :) 즉, 인생=사랑 이라는 얘기지요.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인생에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0라는 얘기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도 바울이 썼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아무리 큰 믿음으로 산을 두세개 옮기고, 아무리 큰 사역을 한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주님 앞에서 꽝이라는 얘기지요. :)

이 사랑이 참 말은 쉽고, 친근하고, 무엇인지는 잘 알겠는데, 실천하기는 쉽지가 않네요.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책은 정말 크게 도전하네요. 가장 소중한 일이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한다고 합니다.

머리로 알고 있는 사랑이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릴까요? 주여, 사랑하게 하옵소서. 내게 보여주시고 부어주시는 그 사랑으로 형제/자매들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약한 저를 도우소서.

(펌) 여러분 가운데 ‘나의 실패가, 나의 하는 일의 실패가 오히려 사람들을 예수 믿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분 계십니까?

여러분 가운데
‘나의 실패가, 나의 하는 일의 실패가 오히려
사람들을 예수 믿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분 계십니까?

“너 처럼 될까봐 안 믿겠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은요, 예수님에게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그 분에게도 그 말을 했습니다.
“너 같이 될까봐..!”
“네가 진짜 그리스도냐!”
“네가 진짜 그리스도인이냐!”
“너 같이 될까봐 난 안 믿겠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에게도 그와 같은 말을 합니다.
그것 때문에 안되는 게 아니에요
그것 때문에 안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임재, 이미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그 불이 이미 우리 가운데 붙었습니다.
우리가 굴러다니는 떨기나무 같을지라도
우리를 태우시지 않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불!
그 분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것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잘하는 그 일로 하는 게 아니고,
우리 안에 계시는 그 성령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헌신하기로 결정하면,
그 때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헌신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의 영광을 위해 우리 자신을 온전히 던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도 우리가 우리를 위해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죽고 다시 사신
그 분을 위해서 살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삶을 시작하면
반드시 우리가 주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어둠의 영이 무너지고 주의 영광이 모든 세계에
가득 채워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것, 할 줄 아는 것 아무 것도 없는 떨기나무와 같은,
마른 나뭇가지와 같은 제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주님 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주를 섬기겠습니다.
세상을 위해 살지 않게 하소서 !
세상의 영광을 위해 삶을 버릴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

– 임 이스마엘 선교사 메세지 중 –

목적이 이끄는 삶: 15일째: Formed for God’s Family

오늘의 주제는 주안의 한가족인 듯 싶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냥 그렇게 생각한 주안의 한가족보다 더 강렬하게 이 책은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네요. 피를 섞은 가족보다 영적인 가족이 훨씬 더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피를 섞은 가족은 지상에서 잠깐이지만, 영적인 가족은 영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가족이라하면, 크리스챤들과의 코이노니아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제가 싱글일때는 학교 CCC 에서 사랑방생활을 하면서 친구들/순장님/간사님들과 뒹굴면서 지냈기때문에 그때는 그 친구들과 그 인연들이 소중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싱글을 넘어서 더블이 되고 트리플이 되면서 각자의 인생을 살기 시작하고 헤어지고 사회에 나오면서 많이 떨어지게 되면서 뜸해져서 그런지, 아니면, 어떤 이유가 되서든지, 현재의 가족보다 영적인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형제 자매들을 내가 과연 더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어쩌면, 과거 교회사람들이나 사람들에 대해서 좋지 않은 모습도 보았었던 영향이 있을 수 있고, 사람이 사람을 신뢰한다는 것이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것도 알게 되는 나이가 되었을 즈음에 영적인 형제/자매를 가족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라는 오늘의 도전말씀은 지금으로는 참 받아들이기가 힘드네요.

물론, Ideal 하게는 저도 동의하는 statement입니다. 그러나 실천하기에는 아직은 제가 예수님의 수준까지 가기는 턱없이 부족함을 여전히 느끼고 삽니다.

이 문제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이 주제가 큰 카테고리안에 있기때문에 계속 나올 주제 같네요.

목적이 이끄는 삶: 14일째: When God Seems Distant

때때로 하나님의 하시는 행동에 대해서 이해가 안될 때도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힘든 일, 나는 그것을 받을 만하지 않음에도 받는 오해, 그리고 하나님을 잘 믿는 다고 하면서 형통하지 못하게 될때 등이 있습니다.

여기에 오늘 두 구절이 저에게 마음에 다가 옵니다.

The most common mistake Christians make in worship today is seeking an experience rather than seeking God.

But as you grow in faith, he will wean you of these dependencies.

하나님의 임재는 내가 꼭 느껴야만 하는 경험에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내가 어떻게 느끼던지 상관 없이 실제 존재 하십니다. 아마도 신앙이 어릴때는 하나님께서 감정과 때로는 비성숙한 기도의 응답등으로 알려주시기도 하는 듯 싶습니다. 저도 하나님을 처음 알게 될때 그러했습니다. 유치한 기도라도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저에게 나타내시고, 연약하고 약한 믿음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달래 주셨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그때보다 성숙해 지면서, 가끔 하나님의 임재가 보이지 않게 느껴지거나 어째서 이런 일이…라는 일이 그 동안 벌어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놓지 않고, 그 전보다 더 한단계 앞으로 나갈 수 있음을 저는 또한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영원히 갑자기 없어지시는 것이 아니고, 그 필요한 단계 단계에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사랑을 쏟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 될때, 무슨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것입니다. 아마 있다면, 고통스러운 그 마음을 하나님께 그대로 가져 오고, 솔직하게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일 것입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 13일째: Worship That Pleases God

계속해서 Worship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내용에서 제가 계속 생각하고 있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에는 일맥상통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주목되는 말씀은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로마서 12장 1절의 말씀입니다. 몸을 제사로 드리라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Physically 몸을 태워서 제삿밥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요? :) 성경 전반적으로 볼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Physical 한 제사는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 분이 원하시는 것은 언제나 마음인데 어떻게 몸을 제사로 드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마음이 몸과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얘기 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있잖아. 내가 가지 않아도 마음만은 있다는 것을 기억해줘. 정말 그럴까요? 몸이 없다면 사실 마음이 있을 수 없지요.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어떤 일이나 행사나 어떤 event가 있을때, 몸이 없는데 어떻게 그 사람이 정말 참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할까요. 요즘은 Conference Call 등으로 Remotely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도 합니다만, 그것 역시 몸은 그곳에 집중하여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요.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은 그런 말씀이라고 합니다. 내가 있는 곳에 내 영혼과 마음이 있다는 것. 하나님을 섬긴다고 한다면, 내 몸이 하나님을 섬기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말로만 섬긴다고 하는 것은 위선자이고, 하나님께서 무척 싫어 하시는 것이지요. 말로는 정직해야 한다, 사랑해야 한다 하면서, 실제 행동이나 그늘진 곳에서의 행동이 다르다면, 그것은 위선이며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는 얘기 같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 12일째: Developing Your Friendship with God

오늘은 하나님과의 우정(?)을 더 깊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첫째는 정직함이고, 둘째는 믿음의 순종이며, 세째는 열정인 듯 싶습니다.

저도 정직함에 대해서 무척 소중하게 생각하고, 예전에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다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에 조금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함이야 말로 관계를 깊게 하는데 뿐 아니라 그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데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대학생시절에 과연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는 것인가, 성경이 정말 맞는 것인가, 기독교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진리가 맞는 걸까 라는 의심을 강하게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시절에 제가 했던 행동중의 하나는 무조건 믿자가 아니라, 정말 존재하는 신이 있다면 알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 했고, 내가 알 수 없는 것이라면, 기독교는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정말 사랑하신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 그분의 전적인 사랑으로 그가 저에게 나타내셨습니다. 이 사실은 언젠가 또 자세하게 기록할 것이지만, 요지는 저 역시 솔직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갔을때, 그 분이 더 기뻐하시면서 받으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오늘 읽은 구절중에 재미있는 것 하나를 기록합니다.

God listens to the passionate words of his friends; he is bored with predictable, pious cliches.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면서 하신 말씀도 기억이 납니다. 기도할 때에 중언부언 하지 말고, 주기도문과 같이 기도하라는 말씀. 그 말씀과도 통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의 뜨거운 우정을 지속적으로 갖추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그 분과 대화가 필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바쁘고 정신이 없는 요즘 생활속에서 하나님과의 시간을 따로 떼어 놓기가 그렇게 힘겨운 일인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피로나 약함보다 그 분을 만나고 교제하는 시간속에서, 새벽 날개치는 독수리의 힘을 그 분이 따로 또 주실 것을 믿겠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 11일째: Becoming Best Friends with God

때때로 제 자신이 예언하는 은사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 종종 놀라곤 합니다. :)

어제 worship을 잘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가 생각했던 것이 친밀감이었는데, 오늘의 주제가 바로 그 friendship이네요. :) 그리고 그 친밀함을 위해서 여러가지 방법의 예들을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가장 오늘 인상 깊었던 예는 휴대폰등으로 알람을 1시간 마다 맞추어 놓고, 시간이 될 때마다 짧게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하루중에 일에 집중하다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고 지나갈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벌써 일주일이 지나가기도 하구요. 시간마다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잠깐만이라도 가져본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어제의 실천사항인 하루 한시간 완전히 하나님과의 개인시간을 갖는 것에 오늘 첫날부터 실패했습니다. 내일은 새벽예배도 있으니, 조금 일찍 일어나서 말씀묵상과 말씀을 조금 읽고, 새벽예배에 기도로 채워야 겠다는 생각을 해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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