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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이끄는 삶: 14일째: When God Seems Distant

때때로 하나님의 하시는 행동에 대해서 이해가 안될 때도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힘든 일, 나는 그것을 받을 만하지 않음에도 받는 오해, 그리고 하나님을 잘 믿는 다고 하면서 형통하지 못하게 될때 등이 있습니다.

여기에 오늘 두 구절이 저에게 마음에 다가 옵니다.

The most common mistake Christians make in worship today is seeking an experience rather than seeking God.

But as you grow in faith, he will wean you of these dependencies.

하나님의 임재는 내가 꼭 느껴야만 하는 경험에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내가 어떻게 느끼던지 상관 없이 실제 존재 하십니다. 아마도 신앙이 어릴때는 하나님께서 감정과 때로는 비성숙한 기도의 응답등으로 알려주시기도 하는 듯 싶습니다. 저도 하나님을 처음 알게 될때 그러했습니다. 유치한 기도라도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저에게 나타내시고, 연약하고 약한 믿음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달래 주셨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그때보다 성숙해 지면서, 가끔 하나님의 임재가 보이지 않게 느껴지거나 어째서 이런 일이…라는 일이 그 동안 벌어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놓지 않고, 그 전보다 더 한단계 앞으로 나갈 수 있음을 저는 또한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영원히 갑자기 없어지시는 것이 아니고, 그 필요한 단계 단계에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사랑을 쏟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 될때, 무슨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것입니다. 아마 있다면, 고통스러운 그 마음을 하나님께 그대로 가져 오고, 솔직하게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일 것입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 13일째: Worship That Pleases God

계속해서 Worship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내용에서 제가 계속 생각하고 있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에는 일맥상통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주목되는 말씀은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로마서 12장 1절의 말씀입니다. 몸을 제사로 드리라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Physically 몸을 태워서 제삿밥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요? :) 성경 전반적으로 볼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Physical 한 제사는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 분이 원하시는 것은 언제나 마음인데 어떻게 몸을 제사로 드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마음이 몸과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얘기 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있잖아. 내가 가지 않아도 마음만은 있다는 것을 기억해줘. 정말 그럴까요? 몸이 없다면 사실 마음이 있을 수 없지요.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어떤 일이나 행사나 어떤 event가 있을때, 몸이 없는데 어떻게 그 사람이 정말 참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할까요. 요즘은 Conference Call 등으로 Remotely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도 합니다만, 그것 역시 몸은 그곳에 집중하여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요.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은 그런 말씀이라고 합니다. 내가 있는 곳에 내 영혼과 마음이 있다는 것. 하나님을 섬긴다고 한다면, 내 몸이 하나님을 섬기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말로만 섬긴다고 하는 것은 위선자이고, 하나님께서 무척 싫어 하시는 것이지요. 말로는 정직해야 한다, 사랑해야 한다 하면서, 실제 행동이나 그늘진 곳에서의 행동이 다르다면, 그것은 위선이며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는 얘기 같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 12일째: Developing Your Friendship with God

오늘은 하나님과의 우정(?)을 더 깊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첫째는 정직함이고, 둘째는 믿음의 순종이며, 세째는 열정인 듯 싶습니다.

저도 정직함에 대해서 무척 소중하게 생각하고, 예전에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다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에 조금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함이야 말로 관계를 깊게 하는데 뿐 아니라 그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데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대학생시절에 과연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는 것인가, 성경이 정말 맞는 것인가, 기독교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진리가 맞는 걸까 라는 의심을 강하게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시절에 제가 했던 행동중의 하나는 무조건 믿자가 아니라, 정말 존재하는 신이 있다면 알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 했고, 내가 알 수 없는 것이라면, 기독교는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정말 사랑하신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 그분의 전적인 사랑으로 그가 저에게 나타내셨습니다. 이 사실은 언젠가 또 자세하게 기록할 것이지만, 요지는 저 역시 솔직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갔을때, 그 분이 더 기뻐하시면서 받으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오늘 읽은 구절중에 재미있는 것 하나를 기록합니다.

God listens to the passionate words of his friends; he is bored with predictable, pious cliches.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면서 하신 말씀도 기억이 납니다. 기도할 때에 중언부언 하지 말고, 주기도문과 같이 기도하라는 말씀. 그 말씀과도 통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의 뜨거운 우정을 지속적으로 갖추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그 분과 대화가 필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바쁘고 정신이 없는 요즘 생활속에서 하나님과의 시간을 따로 떼어 놓기가 그렇게 힘겨운 일인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피로나 약함보다 그 분을 만나고 교제하는 시간속에서, 새벽 날개치는 독수리의 힘을 그 분이 따로 또 주실 것을 믿겠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 11일째: Becoming Best Friends with God

때때로 제 자신이 예언하는 은사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 종종 놀라곤 합니다. :)

어제 worship을 잘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가 생각했던 것이 친밀감이었는데, 오늘의 주제가 바로 그 friendship이네요. :) 그리고 그 친밀함을 위해서 여러가지 방법의 예들을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가장 오늘 인상 깊었던 예는 휴대폰등으로 알람을 1시간 마다 맞추어 놓고, 시간이 될 때마다 짧게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하루중에 일에 집중하다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고 지나갈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벌써 일주일이 지나가기도 하구요. 시간마다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잠깐만이라도 가져본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어제의 실천사항인 하루 한시간 완전히 하나님과의 개인시간을 갖는 것에 오늘 첫날부터 실패했습니다. 내일은 새벽예배도 있으니, 조금 일찍 일어나서 말씀묵상과 말씀을 조금 읽고, 새벽예배에 기도로 채워야 겠다는 생각을 해보네요.

목적이 이끄는 삶: 9일째: What Makes God Smile?

하나님을 미소짓게 만드는 것이 삶의 목적이다라는 것이 오늘의 주제이고, 오늘의 주제 말씀의 대표는 노아입니다. 노아에 대해서 예전에 한번 제 블로그에 기록한 적도 있습니다.

오늘의 이 책에서는 노아의 Example을 보면서 얼마나 그가 하나님을 미소짓게 하였는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미소짓게 하는데는 믿음이 필수 인 듯 싶습니다.

6 But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Him, for he who comes to God must believe that He is, and that He is a rewarder of those who diligently seek Him.
(Hebrews 11:6, New King James Version)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렇게 하기 위해 책에서는 여러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하나님과의 친한 관계를 가지려면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과 함께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미소짓게 하는 것이 나는 힘든데 하나님만 미소짓게 하는 건 아니고, 서로 아주 친한 사이끼리 혹은 가족끼리 혹은 부모가 아이와의 관계에서 보이듯이 상호간의 즐거움과 기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을 기쁨으로 믿는 마음에서의 삶인 것 같네요.

가수 장혜리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께요”

출처: GodPeople.com의 News (2008년 4월 26일, 10시 28분)

장혜리씨의 노래,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께요“를 듣다가, 갑자기 그 분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졌습니다. 찾아보니, 의외로 크리스챤으로 CCM 가수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발견은 2008년에 기록된 GodPeople.com의 News에 있었습니다. 여기에 그 내용의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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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년대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께요’ 라는 곡으로 인기를 누렸던 가수 장혜리가 CBS TV 찬양 프로그램 <워십콘서트 치유> ‘찬양으로 드리는 고백’에 출연, CCM가수가 되기까지 자신의 삶과 그 고백이 묻어나는 찬양을 시청자들과 함께 나눈다.

은퇴 후, 깊은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빠져

1986년 ‘오늘밤에 만나요’로 데뷔한 장혜리는 빼어난 외모와 시원한 음색, 뛰어난 가창력으로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는 무대공포증으로 가요계 생활을 힘들어했고, 결혼 후 은퇴를 하면서 깊은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빠져 절망 속에서 살았다.

“결혼 후 우울증이 심해져 불면증까지 있었다. 겨우 뒤척이다 새벽에 잠이 들면, 새벽기도를 가려고 준비하는 남편 때문에 잠이 깨곤 했는데, 그 때는 화가 나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러면 냉장고에 있는 술을 다 마시고, 새벽기도에 갔다 들어오는 남편을 괴롭히곤 했다.”

“그 당시에는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서 귀중하다거나 소중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투신을 하겠다고 서서 ‘하나님 나 지금 죽으려고 하는데, 나 여기서 이렇게 죽어요. 내 삶이 여기서 끝나요’라고 말을 하는데, 그 순간 눈물을 흐르면서 통곡이 나와 주저앉고 말았다.”

인생의 벼랑 끝에서 장혜리를 다시 일으킨 힘은 바로 신앙이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라는 말씀을 주시고, 사랑을 주셨다.

“그 말씀과 사랑으로 존재감이 회복되고 나니까 그동안 죽으려고 생각했던 시간이 너무 안타깝고,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씀과 찬양을 통해 병든 몸과 마음 회복돼

그 후 수지 지구촌 교회에 출석,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장혜리는 말씀과 찬양을 통해 병든 몸과 마음이 회복되기 시작했고, 주님을 향한 마음을 담아 지난해에는 <장혜리 가스펠 앨범>을 출시하며 찬양사역자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장혜리
“당시에는 성대가 막힌 상태였고, 몸과 마음이 지쳐서 노래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녹음실에만 들어가면 노래가 나왔다. 이번 음반은 하나님의 은혜로 만들어진 것 같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뜨거운 첫사랑을 경험하고, 가스펠 음반을 발매한 장혜리는 요즘 재소자와 장애우를 비롯해,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간증과 찬양을 함께 나누고 있다.

1980년대 히트곡 ‘토요일은 밤이 좋아’, ‘사랑이 저만치 가네’의 가수 김종찬 전도사가 진행하는 <워십콘서트 치유> ‘찬양으로 드리는 고백-가수 장혜리 편’에서는 그의 음반에도 수록된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나 무엇과도 주님을’ 등의 찬양도 함께 나눌 수 있다.

크리스챤 2.0 운동 소개

조현진님의 블로그에서 크리스챤 2.0 운동과 인터넷 문화라는 글을 우연히 접했습니다.

아직 블로그를 전체적으로 읽어보지 않아서 조현진님이 어떤 분인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계신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파악이 되지는 않았습니다만, 크리스챤 2.0운동과 인터넷 문화라는 그 글만 놓고 본다면, 우선 많은 부분에 있어 동감이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질문사항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질문인 듯 싶어 여기에도 가져옵니다.

올바른 인터넷 문화 만들기 질의

1. 크리스천 2.0운동 소개와 구체적인 활동 사항을 말씀해주세요.
2.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인터넷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할까요?
3. 기독교인들이 비방과 핍박을 인터넷에서 하는 경우에 해결책은?
4. 인터넷을 자주 접하는 기독교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올바른 인터넷 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요즘 고민하고 있는 부분인데,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을 만나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좀 더 생각을 다진 후에 저도 다시 글을 올리도록 하구요, 오늘은 조현진님의 블로그를 소개하는 정도로 여기서 마칠까 합니다.

Supernatural Season 3까지 보고…

Supernatural Wallpaper, copyright at LuvYaJensens Wallpapers (http://www.supernatural.tv/gallery2/fanart/walls/luvyajensen/index.html)
Supernatural Wallpaper, copyright at LuvYaJensen's Wallpapers (http://www.supernatural.tv/gallery2/fanart/walls/luvyajensen/index.html)

짬짬히 시간나는 데로 Supernatural이라는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내용은 Horror 식 드라마인데, 전체적으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별로였습니다. 점수로 매긴다면, 3/10. 그래도 이 드라마를 보고 느낀점을 한두가지 써내려갈까 합니다.

1. Season 1

우선 Supernatural의 시작은 Dean 과 Sam Winchester 형제집안의 어릴때의 이야기부터 시작됩니다. 동생인 Sam이 6개월이 되는날, Demon이 찾아와 어머니를 죽이고 아버지가 Winchester 형제를 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 아버지는 Winchester 형제들을 Hunter로 키웠는데, 어느날 행방불명이 됩니다. 그래서 Winchester형제들이 아버지를 찾아다니면서 Hunting한다는 내용입니다.

Season1은 모든 Supernatural한 것들은 모두 Evil 입니다. 내용도 무척 단순하고, Season1의 내용은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가 전체적인 줄거리인데, 특별히 중간중간의 대부분의 Episode는 아버지 찾는 것과는 무관하고, 그냥 Season을 채우기위한 Hunting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루하기도 하고, 가장 수준낮은 Horror Drama가 아닐까 할 정도로 시나리오가 식상되었고, 예측가능한 이야기들 입니다.

2. Season 2

Season2에 들어오면서 내용이 살짝 달라집니다. Season1은 모든 Supernatural한 Evil로 그렸는데, Season2에 오면서 Evil한 Supernatural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Season 1에 비해서 조금 업그레이드 된 느낌이지만, 역시나 Horror TV Series 답게 시나리오들의 참신성은 많이 떨어집니다. 카메라 앵글과 음악등에 의해서 다음장면에 무엇이 나올지 벌써 알게 되고, 그러다 보면 크게 재미는 없네요.

3. Season 3

Season3은 Dean이 Season2 마지막에서 Sam을 살리기 위해 Demon과의 Deal로 시한부인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Season3를 모두 채우기 위해 중간중간의 필요없는 Episode들이 많이 있습니다. Season2에 비해서도 그렇게 나아진 것은 모르겠습니다. 조금 그래픽 효과가 Upgrade 되었다는 정도.

4. Pros & Cons

이 Supernatural을 Season 3까지 보고 나서 느낀 것은, “아, 지옥이라는 곳이 그토록 끔찍한 곳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기독교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얘기하면서, “그런 하나님이라면, 차라리 나는 지옥을 가겠다.”라고 하는 사람도 본적이 있습니다. Supernatural에서도 가끔 나옵니다. 지옥에 대해서 무시하거나 지옥을 기꺼이 가겠다고 하는 용감(?)한 사람들도 등장합니다. Supernatural에서 나오는 지옥은 그야 말로 끔찍합니다. 얼마나 끔찍하냐하면, 심지어 지옥에 있는 귀신들도 너무 그곳이 혹독해서 뛰쳐나오고, 탈출하고 싶어 하는 곳입니다. 그런 귀신이, 지옥을 가겠다고 하는 사람을 보고, 씩 웃습니다. “그래, 한번 가볼래? 영혼 나에게 한번 팔고 가지 않으련?” 하고 꼬십니다. 자기는 결코 가고 싶지 않은 곳이 지옥인데, 허약한 인간은 그렇게도 지옥에 가보고 싶은가 봅니다. :) Supernatural에서 묘사하고 있는 지옥은 누가복음 16:19~31에 예수님께서 예화로 들은 음부에서 고통받는 부자의 모습인 불꽃의 지옥은 차라리 나은 모습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곳인가 봅니다. :) 그리고, 저도 이점은 사실 동의 합니다.

대체적인 시나리오는 젊은 층을 겨냥하여, 잘생긴 청년과 섹시함을 자랑하는 여자들이 많이 등장하고, 그냥 웃고 즐기고, 가벼운 Horror TV Series를 즐기는 정도라면 딱 맞는 것입니다. 그렇게 심도있는 내용은 없고, 즐기기에 좋은 드라마인 듯 싶습니다.

자연재해에 대한 종교질문에 대한 나의 답

원문: 종교에 관한 질문입니다…

>그냥 지나가다 질문인데요….하느님과 그의 아들 예수는 전지 전능하고 전재하시고 세상을 창조하셧자너요….그런데 중국에서 지진을 일으켜 10만명을 한꺼번에 사망시킨건 왜 그러신걸까요? 꼭 자연재해 말고도 베트남전과 킬링필드 사건…인구가 4~5년만에 300백만이 죽었다는데…..왜 인간을 사람하신 하나님이 인간이 인간을 그렇게 혹은 자연재해를 일으켜 그렇게 하신거죠? 요 질문에대한 해답을 구할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거듭날수 있을것 같은데…교회를 다녀도 이런 의문들이 머리를 아프게 하네요…떱
>
>그냥 드는 생각은
>1) 벌을 내린것? 초등학교 아이들도 죽었다는 점에서 이들에게까지 벌을내려 사망시키셨겠다…라고 믿지 않고 싶네요
>2) 전재 전능하지 못한 신이라서//….. 이러면 성경이 뻥이라는게 되고
>3) 인간의 머리론 도저히 이해를 못하는 신의 영역에서의 일이다// 흔히 속칭 신앙이 깊다는 개신교인들이 하는 말인데…..걍 말이 안되는걸 설명할길은 없고 그러니까 잔소리 말고 믿어라,..라는 말인데….믿으나 안믿으나 신의 영역은 모르는데 아는척들은 왜 하는건지……솔직히 궁금합니다…..
>
>다른 답이 될만한게 또 있는지….떱
>

이런 종교의 토론에서는 신자와 비신자간의 의견이 너무나 극명하게 대립되고 있을 뿐 아니라, 서로의 주장에서 일치를 보기가 너무나 힘이 듭니다. 정치, 종교토론이 가지는 것의 장점이라면, 양방간의 대화를 들어보고, “아, 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입장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생각이 눈꼽만치라도 있다면, 이미 그 토론은 많은 부분 순수성을 잃게 된다고 보여 집니다. 물론, 대부분의 토론에는 그런 부분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구요.

저는 정통 기독교 신자의 입장에서 질문하신 것에 대해서, 저도 고민했던 부분이었고, 이제는 제가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답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했을 당시에는 완벽한 세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하는 시점은,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면서부터 많은 어려움들이 인간들에게 다가 옵니다. 여기서 “죄”란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무관심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 “죄”에 대한 것은 또 다시 큰 이야기 이므로 여기서는 Bottom line만 언급합니다.)

이 죄로 인해서, 자연을 다스려야 할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자연도 인간에게 더이상 복종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 같습니다. 창조때는 땀을 흘리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세상이었으나, “죄” 이후에는 땅을 갈구고, 땀을 흘려야만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 이후로 빚어진 인간의 죄로 수 많은 불합리가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자연재해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경고가 들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의 많은 재해는 일어날 필요도 없는 재해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인간에게 자행된 재해가 많이 있습니다. 최근에 나타난 전쟁과 살인무기, 지구온난화로 인한 홍수와 지진들, 그에 따른 식수의 부족과 식량난이 그러합니다.

그것은 총체적으로 인간들이 만들어낸 어려움이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왜 막지 않으실까요? 이 질문의 간단한 답은, 하나님이 인간들이 만들어낸 쓰레기를 치우는 분인가? 라고 되묻는 질문으로 할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그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로보트로 만들지 않으셨고, 인간이 인간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짓는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인간이 생각과 결정은 다 하고, 만들어낸 결과가 재앙일때, 하나님이 그 재앙을 치우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실수하기 바로 일보 직전에 막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냥 뒷전에서 가만히 보고 있으시지 않으시고, 인격적인 방법으로 다가오셔서 방법을 제시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인간이 범하고 가진 모든 실수와 죄악을 죄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예수님에게 덮어 씌우고 책임을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사람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이 제가 가지고 있는 대략적인 답인데요, 제가 잘못알고 있거나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으면 (정통 기독교의 입장에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버지 학교 간증문

두란노 아버지학교 간증문

아버지학교를 처음 들은것은 샌디에고에 와서 한빛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입니다. 한빛교회에는 가정교회가 존재하는데, 가정교회의 장격인 청지기께서 아버지학교를 소개했습니다. 아버지학교가 어떤 것인지 대충 설명은 들었지만, 항상 Skepticism이 몸에 배인 저는 간단하게 인터넷으로 Research를 했습니다. 제가 알아낸 사실은 아버지학교는 한국의 두란노에서 주최하는 성경적인 가정에로의 회복관련 프로그램중의 하나로 아버지 학교를 통해 참된 아버지의 모습에 대해 갖추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두란노에서 주최한다는 것이 이단이 아니고 신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속에서 사실상 가정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던 부분들에 대해서 좀 더 프로그램을 통해 확실하게 하고, 보완하고 수정할 부분이 어떤 것이 있는가에 대해서 내가 수용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 학교를 등록했습니다.

아버지 학교를 하면서 정확하게 제 가슴에 꽂힌 것은 두 부분이었습니다. 하나는 “Love your wife, Help your wife, Strengthen your wife, God gave her to YOU.” 라고 외치는 어떤 목사님이 외치는 동영상을 볼때 였습니다. 또 하나는 세째날에 한빛교회 정수일 목사님이 자녀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자녀들은 가르치는 것을 배우지 않습니다. 자녀들은 본데로 배웁니다.” 라고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성경을 믿으면서, 논리적이지 않은 몇가지의 부분도 같이 믿습니다. 예를 들면, 삼위일체와 예정론등이 그것입니다. 저도 그것이 왜 믿겨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엔지니어로 직업을 가진 사람입니다. 논리적이지 않고, 이치에 맞지 않으면 잘 믿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부분을 100% 완벽하게 믿습니다. 그러나 아직 어떻게 그것을 설명해야 할지는 잘은 모르겠습니다. 분명하게 언젠가는 통쾌하게 설명 할 수 있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또한 믿습니다.

결혼에 대한 생각에 대한 모순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배우자를 정하셨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실수도 있는 하나님이시지만, 그 분은 사랑이시기에 저에게 선택권을 주셨고, 나는 그 선택권을 이용할 권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권리를 누립니다. (그 누리는 삶속에 물론 감사가 있습니다.) 그 선택권을 가지고, 저는 지금의 와이프를 선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와이프를 하나님이 주셨다는 사실도 믿습니다.

그런데, 희한한것은 하나님이 와이프를 주셨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 초기에만 살짝 머리로 알고 있었다가 몸으로, 경험으로는 와이프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택권으로 내가 선택했다는 사실만이 나에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혼생활을 내 힘으로 무언가 이끌어 가려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하나님께 상의하고, 그분께 지혜를 구하기를 게으르게 하고, 대신에 나의 경험과 지혜를 활용하려고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서로 많이 노력하였고, 하나님의 은혜로 와이프가 아이도 가지게 되어 서로간의 상처는 우선 넘긴 것 같았습니다. 아이로 인해 싸우는 모습은 그 뒤로는 없었고, 또 서로간에 잘못을 인정하고, 상처를 딛고 서로 노력하려고 많이 애를 쓰기는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깊은 상처까지 완전히 치유되지는 않았다고 고백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버지학교의 그 목사님의 동영상의 메시지는 제 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God gave her to YOU.” 하나님이 재산도 주시고, 지혜도 주시고, 직장도 주시고, 아이도 주셨듯이, 하나님께서 그녀를 저에게 주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회피하려고만 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녀를 저에게 주셨다는 그 사실을 머리로 모르지는 않았겠지만, 가슴으로 내가 뜨겁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아내, 와이프, 그녀. 그래서 나는 그녀를 책임지고 맡아서 해야 할 일들이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녀를 방치하면 안되고, 그녀에게 무관심하면 안되며, 그녀를 괴롭히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으로, 나는 소중하게 그녀를 다루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저는 아버지 학교의 프로그램으로 확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 있던 많은 것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저는 들은 것 같습니다. “I gave her to you,” 와이프가 나를 선택한것도 아니고, 내가 그녀를 선택한것도 아닙니다. 물론, 서로 선택은 했습니다만, 그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녀를 나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녀에게 주시기도 했지요. 이제는 어쩌면, 예전과는 다르게 와이프에게 조금 업그레이드된 부분으로써 와이프를 대할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이제 겨우 두달 된 딸이 있습니다. 사실 딸을 보면서, 어떻게 놀아주어야 할지,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지, 어떻게 딸이 크면서 반항하게 될때, 어떻게 care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이론을 정립해 보지만, 항상 그 오차는 있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아이를 그다지 살갑게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아버지 학교에서 한가지의 말씀으로 큰 도움이 되는 든든한 Quotation을 얻은 것 같습니다. “자녀는 가르친데로 배우지 않으며, 본데로 배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본을 보일때, 자녀들이 아버지를 보고 배운다는 그 두렵고도 떨린 그 말씀을 잊지 않을 것 같습니다. 참 귀하게 인생에 있어 미리 알게 되어 감사할 뿐입니다.

어쩌면, 저는 몇년후에 또 다시 아버지 학교에 오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딸이 어느정도 성장하고 또 그때에 내가 가진 어려움들이 부딪힐때, 하나님께 좋은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또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사람들에게도 소개 시켜 주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좋은 기회에 좋은 프로그램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가르쳐 주신 두가지를 잊지 않고 살것을 기도합니다.

요정이야기와 종교의 차이점

잘 알려진 무신론자인 리차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원제: The God Delusion)”이라는 책을 샀다. 이 책을 산 이유는 얼마나 그 무신론자가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 토론하는지 보고자 함이고, 내 자신이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 바보같은 책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고 하는데, 나는 그들에게 이 책이 정말로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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